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고슬라비아 전쟁 (문단 편집) == 2001년 마케도니아 반란 == 2001년 1월 22일 ~ 11월 12일 2001년 마케도니아 반란 또는 [[코소보]]-[[북마케도니아|마케도니아]] 전쟁이라고 부른다. [[1998년]]-[[1999년]] [[코소보 전쟁]] 과정에서 [[슬로보단 밀로셰비치]] [[신유고 연방]] 대통령의 [[알바니아인]] [[학살]]로 인해 코소보 거주 알바니아인 중 36만 여명이 북마케도니아(당시 마케도니아)에 [[난민]]으로 정착해 있었다. 그러나 마케도니아는 나라 사정이 열악해서 전 국민의 20%에 달하는 알바니아계 주민들[* 난민만 36만 명이었다. [[마케도니아]]에는 이전부터 [[알바니아인]]들이 상당수 살고 있었는데 이들을 뺀 수치. [[2021년]] 현재 마케도니아 거주 알바니아인들은 약 40만 명이다. 이전부터 북마케도니아에 알바니아인들이 20만 명 이상 거주했기 때문.]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었다. 당연히 북마케도니아에 살고 있는 알바니아 난민들은 생활이 열악해져갔고, 북마케도니아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었다. [[코소보 전쟁]]이 마무리되어 코소보가 사실상 [[세르비아]]로부터 독립하자, 코소보는 북마케도니아 북부 지역에 살고 있는 알바니아인들까지 규합하여 [[영토]]를 늘리려 했다. 그래서 [[1999년]]부터 북마케도니아 내부에서 [[마케도니아인]]과 [[알바니아인]] 간 충돌이 커졌고, 알바니아인들은 이참에 아예 [[분리주의]]를 꿈꾸게 된다. 그래서 [[1999년]] [[11월]] 북마케도니아 거주 알바니아인들은 민족해방군(National Liberation Army)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설립하고 [[2001년]] [[1월 22일]] 알바니아인 난민 거주지역을 [[코소보]]와 합병하겠다며 [[전쟁]]을 일으켰다. [[알바니아]]와 [[코소보]]는 당연히 이를 지원했고, 북마케도니아 내부에서 [[테러]]와 [[게릴라]]전을 병행하면서 북마케도니아 정부군을 괴롭혔다. 북마케도니아 정부는 [[슬로보단 밀로셰비치]]처럼 뭘 테러했다고 인종 전체를 [[홀로코스트]]시켜버리는 '''미친 놈들은 아니었기에''' 대처가 지지부진했고, 알바니아인들은 마케도니아인들이 하는 차별을 구실로 점점 더 세력을 불렸다. 그래서 [[2001년]] 내내 북마케도니아 일대에서는 정부군과 코소보 민족해방군 간 [[전투]]가 지속됐고 사상자도 급격히 늘어났다. [[2001년]] [[7월]]이 되자 '''코소보(알바니아) 민족해방군은 마케도니아 영토의 15%를 차지하는 거대 세력이 되어버렸고''', 북마케도니아 정부군 만으로는 이들을 진압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. [[2001년]] [[7월 26일]] 수도 [[스코페]] 일대[* [[북마케도니아]]의 수도 [[스코페]]는 [[코소보]]와의 접경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.]를 알바니아 민족해방군이 포격하는 사태가 빚어지면서 이 사태가 국제사회의 이슈로 급부상하고 말았다. 결국 마케도니아 정부는 [[2001년]] [[8월]] [[NATO]]에 도움을 요청하였다. NATO는 마케도니아 사태에 개입하여 무력 사용을 자제시키고 협상장에 민족해방군, 알바니아 정부, 마케도니아 정부를 배석시켰다. NATO는 [[알바니아]]한테 북마케도니아 거주 알바니아인들을 알바니아가 수용할 것을 압박했다. 그러나 알바니아 역시 나라에 여력이 없었기에 수용을 거부하여 협상이 길어졌고, 결국 교전이 재개되었다. [[2001년]] [[9월 11일]] [[9.11 테러]]가 터지자 상황이 반전되었다. 알바니아(코소보) 민족해방군은 자신들이 [[9.11 테러]] 응징 과정에서 찍혀서[* 마침 [[알바니아인]]들도 [[무슬림]]이었다.] [[조지 워커 부시]]가 이끄는 [[미국]]에게 얻어맞을까봐 고개를 먼저 숙이게 됐다. 결국 [[2001년]] [[10월]] 알바니아는 36만 명의 마케도니아 거주 알바니아인 중 25만 명을 코소보 본국 송환과 나누는 조건으로 난민을 인수할 것에 동의했고, 나머지 11만 명은 북마케도니아에 잔류키로 했다. 대신 잔류 알바니아인에게는 마케도니아 [[국적]]을 부여하고, 마케도니아 정치권에 진출할 수 있게 이익을 보장하는 것으로 타협이 났다. 이런 합의가 도출되자 서서히 코소보 민족해방군이 무장을 해제했고, [[11월 12일]] 공식적인 종전이 발효되어 마케도니아 사태도 끝을 맺었다. 그러나 [[2021년]] 지금도 북마케도니아 내부에 거주하는 알바니아인들 중에는 [[분리주의]]를 꿈꾸는 세력이 상당수 남아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